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극단주의, 권위주의 회귀, 반민주주의 정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동남아시아 두 주요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도 유사한 조짐이 뚜렷이 관찰되고 있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 집권기 동안 개방적이고 경제 친화적인 이미지를 쌓았던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대통령 프라보워 수비안토의 등장과 함께 권위주의적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필리핀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과격한 통치 이후, 마르코스 대통령과 두테르테 가문의 갈등 속에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으며, 극단적인 발언과 군부 개입 가능성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며 세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인도네시아: 권위주의로 회귀하는가?
조코위에서 프라보워로의 권력 이양
조코위 대통령은 개혁적이고 실용주의적 지도자로 평가받으며, 외국 자본 유치와 규제 완화에 힘써왔다. 특히 현대차 등 외국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었고, 아세안의 중심국으로 인도네시아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24년 대선에서 조코위는 자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군 출신의 프라보워를 지지했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아들(만 35세)을 부통령 후보로 밀어 넣기 위해 대법원의 판결을 이용해 자격 요건을 바꾸는 등, 권력 세습을 시도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프라보워 대통령과 군의 부상
취임 직후 프라보워 대통령은 장차관을 군복 차림으로 국군사관학교에 소집해 군사훈련과 충성심 교육을 받게 하는 등 권위적 행보를 보였다. 이에 대해 “군대 시스템의 장점을 배우기 위한 것”이라 해명했으나, 많은 이들은 군부 독재 시절로 회귀하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상급식 정책과 군 개입
프라보워는 선거 공약으로 전국민 무상급식을 내세웠고, 이를 위해 군에 행정업무를 맡기고 식품 생산·유통에도 개입시켰다. 급식 품질 관리, 배식 차량 운전까지 군이 맡으며, 일각에선 비효율과 부패 가능성, 더 나아가 군부의 경제권 장악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200만 마리 소 수입 계획, 쌀 자급률을 위한 군 농장 조성, 영양 불균형 국가 해소 명분 등도 발표됐지만, 구체적 실행 방안과 재원 조달 계획이 불투명하다.
시장의 경고와 국제적 우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인도네시아의 재정 부담 증가와 정책 불확실성을 우려하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실제로 주가 급락과 루피아화 폭락, 외국인 자본 유출이 발생했다. 80억 달러를 투입해도 환율 방어에 실패한 사건은 시장의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필리핀: 혼란의 정점에서 권력 다툼
사라 두테르테와 부패 스캔들
전 대통령 두테르테의 딸이자 부통령인 사라 두테르테는 수백억 원대의 특수활동비(특할비)를 유용한 의혹으로 탄핵 위기에 처했다. 증빙을 요구받자 가짜 영수증을 제출했고, 보좌관은 체포됐다.
사라는 “자신이 탄핵당하면 대통령과 그의 가족, 하원의장을 죽이도록 킬러를 고용했다”고 공개 발언하는 등 위협적 발언으로 논란을 키웠다.
아버지 두테르테의 체포와 대응
전 대통령 두테르테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약 2만 명을 사살한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의 수배 대상이 되었고, 결국 필리핀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정치적 망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자신의 영적 멘토이자 사이비 종교 지도자로 알려진 인물이 아동 성폭행 및 성매매 혐의로 체포되며, 두테르테 가문에 대한 수사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군의 정치 개입 시도
사라 두테르테를 지지하는 두테르테는 “우리 군이여 일어나라”는 쿠데타 조장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군은 반응하지 않았고, 도리어 마르코스 대통령 쪽에 힘이 실리며 두테르테 가문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다.
민다나오 지역의 분리 독립 주장까지 나오고 있으며, 정치적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동남아시아 민주주의의 위기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최근 정치 상황은 단지 해당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 두 나라는 아세안 내에서 중요한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상징성을 지녀왔고, 외국 자본과 다국적 기업들이 활발히 진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군부 개입, 권력 세습, 포퓰리즘 공약, 법제도 유린, 외국 자본 이탈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젊은 세대와 스타트업의 미래
인도네시아는 22,000개의 스타트업, 14개의 유니콘 기업을 보유한 역동적인 나라였다.
그러나 군 중심의 정책, 비효율적 행정 개입이 그 창의성과 혁신을 질식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상급식조차 혁신 기술과 민간 협업을 통해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음에도, 군이 직접 식판을 들고 나선 것은 그 가능성을 스스로 막은 셈이다.
필리핀 역시 지방 출신 대통령의 반란, 기득권 중심의 권력 재편, 거침없는 언행과 법치 훼손은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결론: 회귀가 아닌 진보를 택할 수 있을까
동남아는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합리화할 수 없는 경제력과 인구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유혹과 정치권의 사적 이익 추구는 이 지역의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 이들의 정치 흐름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극우주의, 권위주의, 포퓰리즘과 무관하지 않다. 동남아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은 단기적 성과나 권력 강화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과 공정한 시스템을 위한 길을 선택해야 할 때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국가 경쟁력이자 국민의 삶을 보호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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